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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시류 문학'이라는 나의 편견을 깨부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선택으로써 고통

by 릴루앤 (Liluen) 2025. 11. 10.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지

 

 

혹시 잘 알지 못하는 일이나 사람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을 갖은 적이 있나요? 저는 그랬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던 과정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묘한 선입견이 생겼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몇 편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저는 그를 진정한 '저항의 문학' 대신 시류에 편승한 '스타일리시한 작가'로 치부하는 편이었어요. 보편적 주제보다는 개인의 허무주의에 머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권위 있는 문장가들의 평가에 귀가 얇아진 탓도 있었습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에게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독서동아리 도서로 선정되어 심드렁하게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러너 무라카미 하루키,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깊은 존경의 마음이 생겨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던 마음에서 순수한 호기심과 존중의 마음이 생겨 그의 책을 읽고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개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서문 中

 

나 자신에 대해 정면으로 이야기했던 경험이 별로 없으므로, 그만큼 정성을 들어 글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말해야 할 것을 정식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모처럼 이런 책을 쓴 의미를 잃게 되고 많다. 그 언저리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는 일은,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원고를 되풀이하여 읽지 않으면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서문 中 인용 -

 

서문에 소개된 것처럼, 이 책은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진솔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회고록입니다. 작가이기에 자신의 내면 속 구차하고 내보이고 싶지 않은 부실한 허점까지도 조곤조곤 은유와 비유의 방식을 빌려 서술해 나가는데 이 서술 방식이 오히려 결점 많은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구도자적인 자세로 다듬고 실현시켜 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라는 묘비명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라는 묘비명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쓰고 싶다는 문장은 그가 러너로서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그의 이와 같은 태도의 근저인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Pain is inevitable), 괴로움은 선택사항이다(Suffering is optional)'라는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유명 작가라는 타이틀을 떼어놓고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보더라도 그의 삶의 태도와 마음, 움직임이 얼마나 성실하고 성찰적이라 대단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렇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이, 앉은자리에서 창작의 세계에 골몰하며 작업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존경심이 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 것의 의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는 소설가라는 의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는 소설가라는 의미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구력이다.

호흡법으로 비유해보면, 집중하는 것이 그저 가만히 깊게 숨을 참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숨을 지속한다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호흡해 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작업이다. 그 두 가지 호흡의 밸런스가 잡혀 있지 않으면 몇 년 동안에 걸쳐 전업 작가로서 소설을 계속 써나가기 어렵다.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中 인용 -

 

그에게 러너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의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 데뷔하고 전업 작가가 된 후, 작가로서의 삶을 보다 건실하게 운용하기 위한 선택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달리는 일 역시도 쉽고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달리기는 '선택으로서의 고통'이었고,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그만둘 이유는 무궁무진하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마인드로 지속하게 된 달리기에서 그는 삶의 은유로서 수많은 난관을 만나고 극복해 나갑니다. 그 과정이 어찌나 성실하고 성찰적이며 실천적인지, 책을 읽는 독자인 저도 그와 함께 고통을 선택하는 과정으로서의 달리기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그와 달리다 보면 내가 미뤄둔 것들, 내가 도망친 것들, 내가 실천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그 과정에 나를 자연스럽게 맞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매일을 꾸준하게 연습하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이야기
매일을 꾸준하게 연습하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의 이야기가 담긴 회고록

 

42km 마라톤, 100km 울트라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레이스 등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벼락 성과가 아닙니다. 이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한 권의 책이 하늘에서 뚝딱 떨어져 나오지 않는 과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가 시도하는 달리기의 세계는, 그가 쓰는 글의 세계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이 고독한 길을 그는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체력의 변화,라는 실존적 장벽을 관조하며, 또 그에 맞는 철학으로 뼈아프게 갈아입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시간을 읽어 나가며 그의 작품에 대해 편협한 편견이 많이 부끄럽고 그런 삶을 한 걸음도 내딪지 못한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 평범한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를 명망있는 작가로 만드는 철학 :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는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는 선택 사항으로서의 고통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 왔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中 인용-

 

달리기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그가 작가로서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를 얼핏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달리기는 글쓰기의 메타포라고 직접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글이기에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쓰기에 신뢰감이 생기는 것은, 그가 달리기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난관을 관조하고 경험하고 훈련하고 단련하며 일구어가는 모습이 결국 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의 과정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를 논할 만큼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에 관심이 많았거나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얼마나 진지한 사람인지, 고통을 선택하면서 다다르고 싶은 경지에 자신을 얼마만큼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더불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와 함께 그 고통의 과정을 지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은 깨달음이 다가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4. 달리기가 아닌 산을 걷는 일에서 느끼는 움직임이라는 삶

올해 새로 시작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산악회에 가입해 산을 오르는 일이었습니다. 평소 운동량이 많지 않았던 사람이라 산을 타는 일은 말 그대로 고통이고 아픔이고 회피하고 싶은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에게도 스스로를 단련하는 어떤 에너지가 있었던지 그런 움직임 자체가 내 삶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걸 스스로는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더 높고 큰 산을 오르고 싶어 평소에는 동네의 작은 산을 오르며 단련을 하게 되고, 그런 시간을 통과하며 몸이 단단해지면서 책상에 앉는 자세가 달라지고 지속되는 시간도 길어지면서 뭔가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건 제게 다가온 또 다른 선물입니다.

세상의 어떤 직업이든 성공의 요체는 재능 못지않게 집중력과 지구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루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소설가로서 중요한 자실은 첫째로 재능이고, 둘째는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붓는 집중력, 셋째는 그런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힘, 즉 지속력이라고 말한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평 중 옮긴이의 말 인용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옮긴이가 서평에서 재해석한 것입니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말이지만, 옮긴이는 이 말이 결국 세상의 모든 직업에 적용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한 발 한 발 나만의 움직임을 직조하고 건실하게 다듬는 시간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고통의 시간 속에 과감하게 몸을 밀어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본문 中 -

 

무엇인가 새로운 다짐으로 실천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삶의 태도를 묻는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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